"옛날 착하고 가난한 남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신이 그에게 선물을 주었대요. 눈물을 담으면, 그 눈물이 진주로 변하는 마술 유리잔이었어요. 남자는 진주를 얻기 위해 매일 눈물을 흘렸어요. 매일 눈물을 흘리기 위해 점점 더 슬픈 일들을 만들어야 했죠. 진주가 생길때마다 남자의 인생은 비극적으로 변해갔어요.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자, 어느 날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칼로 찔러 죽게 했어요. 눈물이 멈추지 않았죠. 유리잔에 진주가 넘쳐 흘렀어요....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물었다고 해요. 그 남자는 왜 양파를 쓰지 않았을까요? 양파로도 눈물을 흘릴수는 있었을텐데...." (p28 )   이상했다. 누경이 기현에게 해준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자신은 양파를 쓰지 못하다는 누경의 음성이 그대로 내 귓전에 울려퍼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음성은 어느새 내 가슴을 아련하게 적시고 있었다. 나역시, 양파를 쓰지 못한다는 누경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이 괜스레 나를 울컥거리게 만들었다.   전경린의 <풀밭위의 식사>는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랑이 주는 아픔, 공허, 고통, 기쁨, 행복등 그 모든것이 작품속에 녹아 있다. 아마도 사랑을 하는 이들이라면, 사랑을 했던 이들이라면 그 감정을 느끼며, 그 속에서 자신의 추억을 회상해볼 수도 있으리라. 누경의 상처와 아픔이 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것 같아, 한장 한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복잡케 했다.   물론 난 누경과 같은 사랑을 해본적은 없다. 오히려 누경과 같은 사랑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20살이 넘는 나이차이도 그렇고, 아내가 있는 남자라는 사실도, ...

내 안에 심장이 '유리' 조각에 밟히다.  사랑이란 감정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한 사람을 오롯하게 마음에 담듯 유리병 안에 마음을 소중하게 품는다. 품는 순간부터 사랑은 기쁨이지만, 때로는 그 기쁨이 독이 되고, 악이 되고, 미세한 먼지에도 '톡' 하고 깨져버린다. 마치 다이나마이트를 손 안에 쥐듯이. 스물여섯해를 사는 동안 나는 누군가를 마음 속에 고이 담아 본 적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 책에서 보는 것처럼 한 눈에 누군가에게 반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품으며 그 사람을 지켜 보지 않았다. 하늘에서 비가 오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나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사랑을 동경했고 지금은 사랑하는 것이 두려웠다. 사랑을 하면 행복한 마음은 잠시 눈물을 흘릴 일도, 마음이 아플 일도 많은 감정의 소모가 나는 두려웠다. 온전하게 나의 마음이 그 사람을 담아두며 생각하는 것이. 그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바라보기를 희망했던 나는 그녀의 작품이 간들거리는 미세한 균열까지도 느끼고 아파하는 누경의 존재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  영원과 순간의 억눌린 틈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이 될까? 갈망, 불가능, 광기, 죽음······ 당신을 사랑해요 대신, 당신을 갈망해요 라든가, 당신이 불가능해요 라든가, 당신에게 미쳐요 라든가, 혹은 당신은 나의 죽음이에요 라고 대체할 수 있을까. 안으로 파고들수록 점점 더 비켜나고 사랑한다고 말할수록 더욱더 외로워지고 마음이 첨예해질수록 점점 더 협소해진다. 특히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는 사이일 때. - p.159  '풀밭 위의 식사'는 누경과 강주, 기현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

로맨스가 실종된 젊음의 감옥 그 잔디밭 어딘가에서 만세라도 외치고 싶었다. 먼지 먹은 책장 속에 숨어있던 사랑에 대한 진실은 불편하도록 합리적이기에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한없이 숭고하고 아름답게만 치장된 사랑의 실체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자기애의 발현이라는 주장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감이다. 허나 완벽한 타인에게 멋대로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투사하고 그것이 격정적인 사랑의 시작이라며 황홀해 하는 이기적인 멍청이가 되느니 로맨스 따윈 잠시 실종되어 버려도 좋다.   하지만 나도 유감이다. 어째서 사람의 사랑은 완전한 타인을 향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사람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람의 사랑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숭고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기적이라도 자기에게로 밖에 향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랑은 숭고해야 한다. 타인에 기생하는 옹졸한 나르시시즘이 아닌 나와 너의 깊은 생체기까지 어루만지는 순수한 열정이었으면 좋겠다. 멋대로 환상으로 치장해 놓고 실체를 드러내 보일 때마다 실망하고 멀어지는 치졸함이 아닌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끝없는 해양 같았으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어수룩한 나의 판타지에 불과하더라도 그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허구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순수하지 못하다. 과정을 생략하기 좋아하는 매체에서의 사랑은 사랑의 껍데기를 업은 복수극이요 사기극이다. 글자 속에 묻힌 사랑은 불가능한 환상 혹은 사랑의 치부만을 묘사 할 뿐, 그 속에서도 사랑은 세속적이다. 완벽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거짓말만 늘어놓는다. 아름다운 척, 고고한 척 하고 있지만 진실하지 못하고 뻔하다. ...

사람들은 곧잘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저마다 생각하고 꿈꾸는 ’캠퍼스 낭만’의 모습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내게 있어 ’캠퍼스의 낭만’은 핑크빛 연애보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풀밭 위의 식사>였다. 화창한 어느 날,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마음 맞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둘러앉아서 먹거리와 이야깃거리를 공유하는 편안한 소풍... 이것이 바로 고3 때 꿈꾸던 대학 캠퍼스의 가장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주로 학교 식당을 떠돌아 다닐 뿐 ’풀밭 위의 식사’는 손에 꼽을 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몇 번의 소풍이 대학 생활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봤을 때도 나는 저자가 나와 비슷한 ’캠퍼스의 낭만’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이 책에서 '풀밭'은 주인공 ’누경’의 과거와 미래에 각각 등장하는 장소다. 우선 과거에 등장하는 ’풀밭’은 그녀가 영원히 봉인해 버리고 싶은 고통과 아픔의 장소였다. 그러나 누경의 미래에서 언급되는 '풀밭'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의 장소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화합의 장소로 변모한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풀밭 위의 식사’는 주인공 누경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책에서 처음 ’누경’을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좀처럼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겉을 봐도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사람이었고, 속은 그녀 쪽에서 결코 드러내지 않으니 알래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연한 자리에서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

따스한 봄날 피크닉을 가는 기분으로 자그마한 가방안에 샌드위치 4조각과 아직도 식지않은 따뜻한 커피 한잔을 펼쳐놓고 싶은 그런 파릇파릇한 풀밭을 상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소풍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나 내일이 소풍날인데 하루밤 사이에 비가 오지는 않을런지 아니면 일기예보에는 분명히 비가 오지 않을거라고 했지만 그 예보가 빗나간것은 아닐런지가 걱정이 되어 밤새 잠을 설치곤 했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지만 어린시절의 그런 작은 꿈들과 추억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잊혀지지가 않는가 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정확한 정답으로 볼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진정한 사랑을 하기까지 그 과정이나 지나가는 길들을 들여다 보면 참 모두가 사연이 있고 또 운명이라고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만남이 가장 우선시 될 터인데요 . 저는 인생을 살다보니 가장 근접한 결과는 바로 정이였던것 같습니다. 어릴때 부터 보고 자라온 서강주를 알게 모르게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던 누경을 보고 저도 한때 아니 어릴때 좋아했던 옆집 삼촌을 아마도 좋아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그때는 흔히 옆집이나 아랫집과 같이 같은 동네 이웃에 살면서 서로가 다 알고 지내는 터라 다 같이 가족처럼 지냈던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런 와중에 모두가 삼촌이고 이모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전혀 친인척이 아니지만 가까운 이웃이라는 점이 어린 나이에 참 친근하게 다가왔었고 멀리 있어 자주 볼수 없는 먼 친척들 보다 어쩌면 더 자주 보고 함께 했기에 가족처럼 지내곤 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 이웃 삼촌에게서 참 좋은 모습도 많이 볼수 있었고...

  왜 사람들은 압생트(Abstinthe)를 탐닉하며 마실까요? 녹색 술로 불리는 압생트에게 무슨 마술이 있는 걸까요? 오스카 와일드는 “계속 마시다 보면 당신이 보기 원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들 사는 만큼 산다고 한다면 우리는 시시때때로 상념에 빠져들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지루하거나 사랑하다가 두렵거나 할  때 은근히 압생트를 마시면 인생을 사는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경린의 장편소설『풀밭 위의 식사』를 읽으면서 겹꽃잎처럼 피어 있는 눈을 가진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에두아르 모네가 그린「풀밭 위의 점심」에 나오는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 우리가 난처했다면 이 소설에 나오는 누경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눈물로 제 뿌리를 적시며 생존하는 기이한 사막 식물’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겹꽃잎처럼 피어 있는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슬픔이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면 눈물이 되어 몸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누경에게는 그런 힘마저 없었습니다. 그만큼 누경의 상처는 깊었습니다. 누경에게 열여섯 살은 아찔했습니다. 남모르게 좋아했던 서강주가 결혼하던 때이었으며 그와 함께 들판에서 보낸 봄날을 잊지 못해 풀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날 풀밭에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열여섯 살의 상처로 인해 그녀는 우울해졌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녀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잔인해졌습니다. 다른 남자와 조금 익숙해지거나 사랑에 빠지려고 하면 그녀는 당혹스러우리만치 일방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연애란 ‘두루뭉술한 의중들 속의 밀고 당김’이었는데 그녀는 두루뭉술한 의중들마저 두려워 했습니다. ...

사랑은 일방적이다. 사랑은 편파적이다. 사랑은 불공평하고 이기적이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사랑에 대해 그렇게 말하곤 했다. 사랑에 빠져 있었기에 인생의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으나, 아름다움 대신 두 손을 내어주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비너스처럼, 한때 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나 그들을 환각상태의 죽음으로 몰고갔다던 압생트 빛깔의 바닷물에 몸을 맡긴 그렇게 누군가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있는 내가 너무도 한심해서, 나는 사랑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사랑은 나를 세상의 작은 점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그래서 사랑에는 공평함이라는 것이 없다고, 사랑은 잔인하다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에 몸을 던진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팔이 잘린 비너스처럼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듯 자기의 색을 찾고, 사랑이란 말을 듣고, 말하고, 쓰는 것 조차 유치하고 어리석다고 느껴졌을때 즈음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사랑이란 원래 그 누구에게도 의지를 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열여섯의 어린 소녀 누경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간직했던 자신의 사람을 잃는다. 자신보다 훌쩍 나이가 많은 사촌오빠, 그래서 더욱 비밀스럽고, 비밀스럽기에 스스로에게는 더욱 간절했던 은밀한 마음이 서강주의 결혼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흘려보낼 작은 틈새마저도 막혀버리게 된 것이다. 어린 소녀의 갈 곳을 잃은 마음은 그녀를 들판으로 내몰고, 목적없이 서성이다 낯선남자에 의해 폭행을 당한다. 열여섯의 소녀는 그날 자신의 첫사랑을 잃고, 처녀를 잃고, 다정했던 아버지를 잃는다. 그리고 그날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강주와 낯선 남자로 갈린다. 자신...

아직 열 여섯살에서 못 벗어난 한 여자와 무엇이든 다 감수하고 희생하는 한 남자. 거기에 새롭게 등장한 남자. 게이 친구에게 정자를 얻는 여자.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또 다른 남자. 소설은 그렇게 그렇게 이들의 이야기로 빈 칸을 채워갑니다.  전경린씨는 제가 좋아하는 정이현씨와는 달리 함축적이고도 자극적으로 문장 하나하나를 마무리합니다. 깔끔함과는 다른 미사여구의 향연이랄까. 몸뚱이들이 경매시장의 상자들처럼 포개져 남녀노소가 엉덩이와 가슴을 부벼대고 콧김을 나누어 마셔야 하는 러시아워의 지하철. 그 상실이 얼마나 견고한 상처로 변할지 모르면서도 누경은 주체할 수 없는 통증. 몇 걸음 더 걷던 누경이 살얼음같이 투명한 얼굴. 책을 넘길때마다 저도 모르게 밑줄을 긋게 만듭니다.  가난하고 착한 남자가 눈물을 흘릴때마다 진주가 생깁니다. 오래전 인어의 눈물이 진주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웬지 아내를 죽이고 펑펑 운 그 남자는 인어공주 스토리에서 나온 왕자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요? 아니면 서강주가 아닐런지. 말 못하는 누경이 다리를 얻기까지 이미 이웃나라 공주에게 장가 가버린 서강주. 다시 만났지만 왕자의 심장을 얻지 못하고 결국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이별을 감수하며 서서히 물거품이 되어버린 유리심장의 그 녀.. 얼마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영화로 봤습니다. 사랑의 묘약 운운 하지만 결국은 그 또한 누경과 강주의 또 다른 이야기였을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야만 했던 이졸데와 그녀를 사랑했던 트리스탄.  기현 같은 완벽한 남자가 현실에 존재할까요 ? 청소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섬세하고 자상하며 심지어 자신의 사랑마저도 단순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독신...

1995년 봄, 그녀와 난 산정호수에 있었다. 연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에 도착해 가벼운 입맞춤으로 그날 그녀와 평온하게 헤어졌다. 호수도 버스안팎의 풍경도 시리도록 평온한 그런 날이, 바로 그녀와 마지막이었다. 그날 같이 있을때 언뜻언뜻 비추던 그녀의 날카로운 유리조각 같은 어두운 표정을 알아채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고 이후의 반년은 나에게 무척 혹독했다.   ****** 나의 기억속에 뭍어둔, 이젠 무감각해졌다고 여기던 그때 기억의 단편들이 전경린씨가 이번에 내놓은 셈세한 상차림인 '풀밭위의 식사'를 읽으며 내내 오버랩되었다. 아마도 전경린씨가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 그 여자 누경에게 전해주고 싶다던  '상처를 간직한 역설적인 평온과 태연'이 무의식속에서 퍼즐처럼 들어 맞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0 봄, 문장마다 작가의 섬세하고 화려한 묘사가 흘러넘쳐 나의 기억들을 자극하는 소설 '풀밭위의 식사'를 읽어버렸다.   # 1. 기현 그리고 누경 소설 속 기현은 대부분 여자들의 판타지속에 머무는 해바라기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첫 만남에서 '정신마저 과거 어느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한 유폐성이 느껴진' 누경의 곁꽃잎처럼 피어있는 눈을 보면서 사랑에 대한 미감을 되찾아 버린다. 소설속 친구 도훈의 말처럼 고래와 기린처럼 다르다고 평가된 두 사람의 성향속에서 기현은 누경에게 '존재가 실현된 행복감'을 느낀 반면 누경은 손을 잡는 접촉에 아무런 느낌도 없는 기현과 자신 사이의 비어있는 부분에 끌릴뿐이다. 격렬한 사랑의 감정의 소모를 홍역처럼 겪었던 누경에게 기현의 감정의 소모가 필요치 않은 만남은 그녀에게 필요했던 ...

흔히 연애소설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사랑에 상처받은 적이 있는가!그 상처의 치유는 정말 힘든다.그 상처는 어떤 약으로도 치료될 수 없기에,작가 정경린은 "풀밭 위에 식사"에서 표현한다.주인공"누경"은 특별한 깊은 상처를 가진 여자,그 상처가 열 여섯 살 때 겪은 일로 20여 년 가까이 흐른 일이지만,스스로 없었던 일처럼 부인하고 부정하고 그렇게 덮어놓은 상태로 세월이 흘러보낸다.작가의 섬세한 터치로 주인공 내면의 흐름을 그려낸다. 가슴깊이 묻어둔 상처를 어루만지듯,그녀의 글은 뜨거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집착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상처를 그녀는 아름답고,냉정하게 누경의 일기장 위에 그려낸다."풀밭 위에 식사"는 나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일상적이고 평온한 가운데"누경"을 등장시키며 나의 마음을 헤집고 다녔다.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주인공 누경과 그런 누경에게 끊임없이 접근하지만,다가갈 수 없는 기현의 관계가 애절한 구애를하는 종달새처럼 느껴진다. 누경은 남자하고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고, 인생도 다른 국면으로 풀려지지 않은 채로 자기 고통에 고착된,스스로는 없었던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고통에 붙들려 있었던 시간이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누경은 굉장히 폐쇄적이고,내성적이고,누구한테도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그래서 "기현"은 누경의 마음밖에서 계속 맴도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주인공 누경의 상처는 육적으로는 치유되나 정신적인 고통은 남아있다.     만남과 이별의 극과극의 순간을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풀밭 위의 식사"는 작가의 의도함이 잘 표현된다.결국 이별이란 결말로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나지만,"세 노르말"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