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있어서 화려했던 한 시절, ’풀밭 위의 식사’가 가장 큰 소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땐 날마다 그런 상상을 했다. 피크닉 가방에 샌드위치 몇 조각과 음료를 챙겨넣고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에 돗자리 깔고 앉아 책 읽는 상상을... 내 옆에는 영혼을 다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한 남자가 있고 저만치 앞에는 우리의 아이들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내가 꿈꾸던 상황을 현실화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은 단조로우면서도 분주했다. 여유로움이 없는 단순함이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결과다.       <풀밭 위의 식사> 이 책은 마네의 명화 ’풀밭 위의 식사’와 제목이 같다. 19세기 중반 살롱에 출품된 그림은 당시 비평가들의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대낮에 점잖은 신사들과 벌거벗은 여인이 풀밭에 동석한다는 설정도 파격적이었지만 여인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 작품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술 작품의 경우 당대에는 비난받았지만 후대에 그 가치는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거나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치’라는 것은 결코 고정된 개념이 아닌 것이다.      전경린 작가의 책은 <엄마의 집> 이후에 오랜만에 읽었다.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여인과 이제 스무살의 된 딸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거나...

‘풀밭 위의 식사’는 봄날 꽃샘추위에 때 모르고 핀 고드름 같다. 12월의 고드름이 가지고 있는 묵직함도 없고, 1월의 고드름이 지니고 있는 영롱함도 없다. 꽃샘추위에 핀 고드름은 그저 스치는 들꽃 같다.   책을 다 읽고 오랜만에 리뷰를 쓰자 생각했다. 드러낼 수 없는 상처로 얼어버린 소설을 읽고 짧은 리뷰 한편 쓰기가 힘들다. 작가는 어떻게 소설, 아니 ‘상처의 시 한 편’을 온전히 완성하였을까. 다시 한 번 그 위대함에 놀란다. 하지만 누경처럼 “나는 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흩어질까 봐.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쓴다. 이 소중한 것을. 이 찬란한 것을.” (p. 157) 아직 어린 시절, 글과 그림으로만 보아오던 ‘위험한 사랑’을 동경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몹쓸 마음이었다. 세상 모든 ‘동경의 사물’들이 그러하듯 직접 나에게 다가오는 그것은 마냥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그에 의해 내 마음과 몸의 온도가 상승했다. 편지를 썼고, 때론 부치기도, 때론 그저 간직하기도 하였다. 이것만은 내 마음이었다.  가끔은 너무 정중한 그가 얄미웠다. 뒤돌아 보면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랑이 더 매력적이다. 즐거움과 기쁨만이 존재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구속받고, 답답하고, 내가 아닌 네가 날 움직일 때, 전에 모르던 기쁨이 나를 충만하게 했다. 마음대로 전화 한 통 걸 수 없었던 누경을 보며,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는 그녀를 보며, 언젠가 내 작고 초라한 손이 생각났다.    “나를 보는 게 좋은가요?” “좋아.” “그런데 왜 전화 안 하세요?” “참는 거다.” “왜요?” “...

   어느 날엔가 불쑥, 물이 쏟아지듯 내 안으로 들어와 온 몸을 적시는 얼굴이 있다. 나는 그를 부르지도, 가라고 등을 떠밀지도 못한다. 그저 그가 스스로 떠날 때까지 거리를 두고 본다. 그의 단정한 옷매무새를, 들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안경을 올리는 오른손의 날렵함을, 꼭 다문 입술을. 멀리서 기적소리처럼, 그와 함께한 시간이 아득하게 몰려온다. 나는 그 고요한 속도에 취해 잠시 휘청, 한다. 그것은 나를 앓게 하고 나를 자라게 한다. 정작 그 시간을 살면서는 꿈꿀 수조차 없던 것들, 감추고 싶어서 마음 깊숙이 꾹꾹 눌러 묻었던 것들을 이제는 기다린다. 내 안에서 만개하기를, 그 때의 고통이, 쓰라렸던 마음이 내 몸 곳곳에 독처럼 퍼지기를 기다린다.  누경을 만나면서, 그녀의 일기를 훔쳐보면서 내 안에는 또 흥건하게 그 때의 시간이 고여 들었다. 사랑했을 때. 혼자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다가서는 기현을 억지로 담으려했던 누경, 모르고 만난 사이인데도 타인은 내 안의 상처를 감지하고 그곳을 향해 손을 뻗는다. 기현이 건드린 시간을 따라 드러나는 누경의 상처를 바라보면서 왜 내 몸 안에 일어나는 통증을 바라보게 된 것인지. 책을 덮은 뒤 며칠 동안을 심란한 마음으로 보냈다.  너무나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고 하나의 길로 걸음을 같이하게 된다. 그들은 불현듯 사라지는 외로움의 통증을 늘 없었던 것처럼 잊고 만다. 그리고 다시 길의 갈래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될 때, 빗장뼈 아래로 돋아나는 통증에 균형을 잃는다. 누경은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서강주에 대한 마음을 한순간에 확인하고 그것을 왈칵 쏟아내지만 그는 그녀를 온전히 안아줄 수 없었다.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는 서강주에게 그녀는 분명 쉴 수...

자연과함께하는책이여서넘좋네요. 자연을사랑하는마음이네요 블로그첨등록하고이벤참여합니다

책을 덮고 한참을 서성였다. 괜히 이리저리 널브러져있던 물건들을 만지작 거려보기도 하였다. 뭘까?! 대체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평소에 익숙하던 공간에서조차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성이게 만들었을까?! ‘먹먹함’ 혹은 ‘공허함’ 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아니 그런 느낌이 계속해서 남겨져, 그런 느낌을 지우고자 괜히 서성거리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린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계속 아무런 느낌 없이 사용하던 물건들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먹먹함과 공허함을 지워내기 위해, 다시 그것들에서 새로운 감촉을 찾아내고 있었던 것일까?! 누구나 과거에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인 사랑이라는 근본에 기인한 감정의 느낌이 먹먹함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이 여자가 변하게 되길 기대했었기에, 그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 기현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었기에, 그 느낌이 공허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지 ㅡ. 이야기의 중심은 누경이다. 그녀의 일기를 따라 먹먹한 사랑의 이야기로 빨려 들어간다. 먹먹하다고 표현은 하지만, 순수하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사랑-사랑이라고 부르지도 않겠지만-이다. 불륜이라는, 그것도 친척이라는 이름을 가진 상대와의 전혀 도덕적이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랑이다. 세상 어느 누가 이런 사랑을 꿈꿀 것인가. 살면서 한번쯤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가슴 찢어질 듯 아픈 사랑을 꿈꿀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랑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그렇듯 나의 생각, 혹은 나의 짐작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져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풀밭 위의 식사』를 다양한 각도로, 볼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사...

세 노르말! 상처,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면 일상으로 품어보자!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에 더이상 공감할 수 없게 됐다. 예전에는 가슴 설레며 읽었던 이야기도 그저 시시한 사랑 이야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에 대한 이상이 현실로 바뀐 까닭일 것이다.      여주인공 누경의 사랑은 열여섯 살 소녀가 꿈꾸는 사랑과는 달리 더이상 환상적이거나 맹목적이지 않다. 그녀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서강주는 불륜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다. 그로인해 그들의 사랑 또한 같은 류의 사랑으로 치부될 수 있으며, 그녀가 가진 상처 또한 여주인공들이 종종 가지는 트라우마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과 트라우마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여느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서강주가 결혼한 뒤의 어느 날, 치마를 입은 채 풀밭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녀가 목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움 때문에 눈을 뜨자 낯선 남자가 유리 조각으로 그녀의 목을 겨누고 있었고, 그 날 이후 그녀의 생은 열여섯 살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유리 조각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을텐데, 그녀는 유리 공예를 하고 있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여 그 상처에 무뎌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가 상처를 대하는 방법이다.    "덮어두기만 했던 상처를 밖으로 꺼내고 진심으로 아파하고 싶었나봐. 생의 어느 구석을 찾아가 홀로 내 몸안의 가시들을 뽑으며 좀 쉬고 싶었던 거야. (p.224)      '세 노르말'. 이 표현은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안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자...

'우동 국물에서 당신  몸냄새가 나요'  한참 이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가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정신이 산만하고 성격이 급한 나는 인터넷에 연재 되는 소설을 진득하게 읽지 못했다. 다음 편을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해 제풀에 지쳐 연재 따라읽기를 그만두곤 했다.그러다 무슨 생각인지  '풀밭 위의 식사'를 연재하는 곳에 들어갔다. 무슨 편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러 편 올라온 소설들 중 손이 가는 대로 무심하게 어느 편을 클릭했는데 이 한 문장에 그만 마음 한 구석이 턱 막혀버렸다. ' 우동국물에서 당신 몸냄새가 나요  때론 살아가며 만난 한 문장에, 어쩌다 스친 눈빛에, 무심히 던진 상대방의 말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나는 이 소설이 출간되면 꼭 사보겠다고 결심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 삶도, 내 사랑도 말이다.  2005년의 나  몇년 전이었다. 아주 먼 곳에서 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투박한 사투리에, 엉뚱한 말들이며 뭐 하나 마음에 차는 구석이 없는 친구였다. 우리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서울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귀찮은 마음에 나는 건성으로 그 친구를 데려고 다니며 서울구경을 시켜줬다.   그리고 몇일 뒤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휴식과 여행 겸 '놀러온나'라는 말 한마디에 의지해 충동적적으로 그 친구가 사는 곳으로 내려갔다. 낡고 덜컹거리는 무궁화호 열차에 5시간 동안 넘게 몸을 싣고, 한 손엔 차표를 꼭 쥔 채로. 갑자기 기온이 오른 봄날씨 때문인지,  몸에 미열이 있던 탓이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흥분에 이상하게 가슴 한 구석이 기분 좋은 리듬으로 뛰었다.   ...

    「풀밭위의 식사」는 프랑스 화가 ‘마네’의 작품 <풀밭위의 점심>을 비틀어 차용한 제목이다. 책 표지에서도 마네의 작품이 변형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작가는 아마도 ‘마네’의 작품 <풀밭위의 점심>속 홀로 벌거벗은 여인에게서 조금의 영감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의복을 갖춰 입은 두 남자 사이에서 턱을 괴고 시선을 의식하듯, 어쩌면 비꼬듯이 응시하는 외설적 모습의 여인에게서 내면의 상처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상처, 치유되지 못한> 주인공 누경은 과거 열여섯 살에 겪었던 끔찍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러 보냈었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는 시간처럼 흘러가버리지 않고 정체되어 고인 물처럼 썩고 곪아갔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 상처는 고개를 내밀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틀에 박혔던 삶에 제동이 걸리면서 스멀스멀 그 상처는 누경의 현실을 짓누르고 물어뜯게 된 것이다. 이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닌 누경의 잠재의식 속에서 감춰졌던 무의식의 발현이다. 정신분석학자 ‘융’은 인간이 사회에 적응해 가기 위해서 누구나가 연극배우처럼 처지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자기를 바꾸어 가는 ‘페르소나’(persona)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기 위해 유연성 있게 가면 속에 자신의 모습을 적절히 바꾸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경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때에는 적절하게 자신의 모습을 포장해 감추고 살아왔다. 하지만 자신만의 리듬을 갖기 위해 오랜 세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난 상처가 누경을 억압하고 그 틈을 타 가면(假面) 속에 감춰진 자신의 모...

    누군가의 연락을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다.  시선은 휴대폰에 꽂혀있고, 혹시 전화나 문자가 왔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 아닌지 불안에 떨며 재차 확인하게 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하는지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앞에서 머리라도 조아릴 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게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다는 건 나 자신을 점차 잃는 것과 같다.  그와 함께여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 《풀밭 위의 식사》의 주인공 누경은 오랜 시간 가슴속에서만 존재했던 사랑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녀, 자신이 된다.  그런데 드디어 자신을 찾았다고 느꼈을 때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현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물지 않은 상처뿐이다.  《풀밭 위의 식사》는 기훈이 바라보는 누경에 대한 이미지로 시작된다.  기훈에게, 나에게, 누경은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 질 때 즈음 소설은 누경이 쓴 일기를 보여주면서 과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누경의 과거에는 그, 서강주가 있다.  서강주가 곁에 있어서 행복하지만, 누경은 상처받는다.  서강주와의 삶만이 의미 있지만, 세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삶이기에 순간순간 누경의 가슴은 무너진다. ‘크리스마스이다.  나는 혼자 있다. (...) 우리 사이에 가능한 것을 적어본다.  너무 빈약하다.(p131)’ 소설은 누경의 과거를 더듬어가면서도 가끔 잊지 않고 현실로 돌아와 누경을 바라보는 기훈의 시선을 보여준다.  인간은 때때로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자신이 느끼...

  작년 겨울의 바램이 이루어졌다. 시리고 아려서 눈물 쏙 빼는 슬픈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는데 여러 권의 책이 스쳐가도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강도는 달랐다. 가슴이 아팠고 모두다의 슬픈 마음주기에 동화되는 내가 있었다. 도가니의 표지는 따뜻한 희망을, 너는 모른다의 표지는 진분홍의 설레임을, 이 표지는 행복한 한 때를 연상시키는 편안함으로 다가왔지만 세 책의 내용은 다 반대였다. 처음 접한 작가의 책을 읽어가며 심기가 불편해졌다. 낯선 표현들이 이물감처럼 잘 적응이 안되는 가운데 우울과 짜증을 동반하는 아주 예민하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자(누경)는 쥐면 바스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교사인 사촌언니(강우 엄마) 살림을 맡아서 해 준 사람은 누경 엄마였다. 강우 엄마가 죽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자 강우는 누경네를 자주 왔고 병역의무를 위해 눌러 있은때는 누경이 12살때였다. 그리고 16살때 독감 걸린 엄마를 대신해 녹색 원피스에 하얀 양말, 여학생 구두를 신고 강우의 결혼식에 아버지와 함께 참석한다. 강우의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자 누경도 눈물이 났는데 아버지에게 혼나면서도 눈물이 계속 난 건 그녀의 앞날을 예감하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결혼식 다녀온 다음주 일요일에 예의 녹색 원피스에 하얀 양말, 여학생 구두를 신고 들판으로 나간다.  들판을 지나 풀밭으로 갔고 풀밭위에 누워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황홀경에 빠진다. 깨진 유리 주둥이를 목에 들이대는 낯선 손길에서...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는 누경에게 늘 강압적이고 늘 화만 내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돌아가신후 꿈에서까지 나타나 누경을 괴롭힌다. 누경이 아버지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 강우를 운명처럼 만나진건 어릴적에 강우라는 씨앗이 마음 ...